일본 존잘 싱어송라이터가 26살에 의문사한 사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자키 유카타 (おざき ゆたか)
 
일본 80년대 대표적인 가수이며,
국내에서도 포지션의 'I Love You' 의 원곡자로도  
잘 알려져있다.
 
젋은 나이부터 작곡을 하고 일찍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한국에선 일본의 김광석, 유재하라고도 불리운다.
 
 
 
 
 
[유년시절 ~ 학창시절 ]

(어린시절 오자키 유타카.jpg)
그는 1965년 11월 29일 도쿄도 세이타구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학창시절 오자키 유타카.jpg)
성장하면서도 우수한 성적을 보여주며
일본 명문고인 아오야마가쿠인 고등부와
육상지위대소년과학고에 20대 1로 합격하였다.
(하지만 두발규정이 싫어서 결국은 
아오야마가쿠인에 입학.)
 
 
우수한 성적과는 다르게 오자키의 학창생활은
꽤나 반항적이었다. 흡연으로 인해 학교를
정학당했으며, 밤중에 시부야에서 친구들끼리
대학생과 싸움이 붙어 경찰이 출동하기도하는
문제를 일으키고 무기한 정학을 받기도 한다.
 
이런 반항적인 성향때문에 퇴학위기까지
가게되자 결국 자퇴서를 쓰게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첫번째 앨범을 만드는 동기가 된다.
 
 
 
 
 
 
[데뷔 ~ 전성기(1982 ~1985)]
1983년 17세의 나이에《열다섯의 밤(15の夜)》
'I Love You' 등이 수록된
《17세의 지도》로 데뷔하였다.
 
후에, 1985년 발표한 2집 <회귀선> 에 수록된
《졸업》이란 곡으로 그가 스타덤에 확실히 오르게 된다.
 
록이라는 당시 일본에서 드문 장르와
사춘기 10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사,
훤칠한 오자키의 외모와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력으로 인하여 '10대들의 대변자' 라는
별명도 생길정도로 어린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졸업》의 히트로 그의 이름은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데뷔한지 2년도 채 되지않아서
오사카 구장을 매진시키고 투어를 돌게된 것이다.
 
하지만 Last Teenage Appearance 투어 때부터 
오자키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공연을 보던 팬들은 그가 공연이 끝나자마자 화장실에서 토하기를 반복했으며, 한 공연에서는 앙코르곡으로 
를 부르다가"내 노래니까 따라부르지마! " 라고 소리치고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오자키의 정신상태가 이상해졌다.'
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소속사에서 잘 무마시켰다.
 
1985년 12월 31일 마지막 투어를 마치고
1986년 새해 첫날, 돌연 무기한 활동 정지를 
한 후, 일본에서 휴식을 취하던와 중
유학 제안을 받게되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불행의 시작 (1986 ~ 1991)]
1986년 말부터 미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한 
오자키는 새로운 곡 작업을 하면서 자신에게
입혀진 기존의 반항적인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시도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 이미지를 
유지하길 바라던 소속사와 마찰이 생긴다.
 
소속사는 오자키의 유명해진 이름값을 이용하여 
그를 하나의 상품처럼 대했다.
 


오자키는 이미 미국 유학 당시 각성제에 중독된
상태였으나, 소속사 측은 다른사업에 투자하여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오자키의 투어 일정을
1987년 7월 부터 1988년 1월까지 무리하게 잡는다.
 
그리고 마약복용상태로 오자키의 목상태가
악화되고 있었음에도 소속사의 기대대로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의 대형공연을 전부 매진시켰다.
 
하지만 계속 각성제에 중독되어가던 오자키는
1987년 12월 22일 각성제 복용 혐의로
구속되게 된다. (심지어 이를 신고한건 아버지.)
 
 
(부인인 시게미와의 투샷.jpg)
그 후 1988년 이후 그는 출소하게 되었다.
구치소에 있을때 유일하게 꾸준히
면회를 와줬던 시게미라는 여성과
같은해 9월 결혼을 하게된다.
 
그 시기에 4집 앨범도 발표했으나 계속된
소속사와의 마찰과 마약중독의 후유증으로
두 차례 자살시도를 하며 불안정한 자살상태로
1년동안 활동을 하지못한다.
 

(아들 오자키 히로야와의 투샷.jpg)
아들인 히로야도 아빠를 따라 가수가 되었다.
활동휴지 기간 도중에도 "다른 소속사로 이적하려면 상당한 위약금을 물어주어야 한다." 
식의 소속사의 금전적인 압박으로 나날히 피폐해지던 
와중에 1989년 아들 오자키 히로야가 태어난다.
 
마침내 1990년 기존 소속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5집 《탄생》을 발표하며, 팬클럽 또한
창단하는 등 재기의 기쁨을 누리는 듯 했으나...
 

(당시 스캔들이 실린 잡지.jpg)
1991년 4월 6일 당시 인기아이돌로 활동 중이던 
사이토 유키와의 불륜 스캔들이 터져버린다.
이 스캔들을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오지키가 아내 시게미와 이혼소송 중이라는
사실도 대중에게 알려진다.
 
오자키는 4집 발매 이후 피폐해지고
이 과정에서 아내인 시게미에게 폭력까지
휘두른 막장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혼 소송중 아내인 시게미는 합의금을 3000만엔
에서 3억엔까지 올렸고 당시의 오자키는
경제적으로 좋은형편이 되지않았기에 큰 돈을
구할 수 없어 이혼은 어찌저찌 무마되었다.
1991년 5월 20일부터 요코하마 아테나를
시작하여 약 3년만에 투어를 재개에 성공하며,
성황리에 공연을 끝마친 후,
6집 작업에 들어가며 다시금 단란한 가족 생활을 보내며 
인생에 안정기가 오개되었다.
 
하지만 1992년 초 그를 항상 응원해주고
편들어주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오자키는 또 다시 정서적 불안을 겪었다.
 
사망하기 5일전에는 아내인 시게미에게
"내가 죽으면 같이 죽어줄 수 있어?" 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죽음뒤의 논란들(1992)]

(사망 이틀 전 생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jpg)
1992년 4월 25일 아침 5시 45분경,
어느 민가의 정원에서 알몸으로 가라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가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그의 몸 어디에도 상처가 없었고
민가 주민인 여성이 말을 걸자 그는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고한다.
 
 
(↓아래 사진 심약자들 약혐주의⚠️ )
 
(당시 멍 투성이로 발견된 오자키의 모습.jpg)
그를 처음 발견한 여성의 말에 따르면
"그는 마치 개나 고양이처럼 몸을 격렬하게 
땅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엄청난 힘으로.
피부가 깨끗했었는데 경찰이 왔을 때는 온몸이
진흙투성이에 상처 투성이였어요."
라며 그가 자해를 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구급차를 불러 오자키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긴급병원에서 진정제를 맞은 후,
오자키의 담당의사는 더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며"이대로 가면 심각해질 수 있다."
라고 말했지만 그의 아내인 시게미가
"오자키가 집에 가고 싶어한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집에서 재우니 괜찮아졌다."
 
의사는 무슨일 생기면 책임 못 진다며 끝까지
만류했으나 시게미는 오자키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간다.
 
오자키의 형과 매니저는 시게미의 집앞에서
소식을 전해듣고 기다리고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후 10시경 되어 상태가 급변하며
호흡이 멈춰있는 것을 발견한 가족이 약
1시간 후인 11시 9분에 신고.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낮 12시 9분에 
결국 사망하였다.
오자키의 공식적인 사인은 폐수종이다.
나중에 부검결과가 공개되었는데 몸에서 무려
치사량 2.7배가 넘는 필로폰이 검출되었다고한다.
 
그러나 당시 오자키는 마약 중독에서 완전히
치유된 상태라고 알려졌었고 매니저 역시
자서에서"오자키는 재판 이후 마약에 손 댄 적이 없다." 
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사망 당시 폐수증 전조 증상도 보이지
않았기에 오자키의 죽음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오자키가 사망 직전 불편한 관계였던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의 전 소속사 사장인 
후쿠다와도 상당히 관계가 안 좋았았다.
 
오자키 사후 출간 된 회고록  『약속의 날』 에서 
"마더 엔터테이먼트 시절 자신의 모습은 '아티스트' 라는 
이름을 단 노예였을 뿐이었다." 라고
표현하며 마더 엔터프라이즈의 사장 후쿠다를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가장 싫어하는 사람으로 언급하며 
가열차게 비난하기도 하였다.
 
사장인 후쿠다가 자신을 묶어놓기 위해 자신을 강제로 
미국에 보내서 각성제에 중독시켰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의 진위 여부는 밝혀지지않았다.
(사장이 야쿠자라는 설도 있다.)
 
불륜과 가정폭력 사건으로 관계가 안 좋았던 
아내인 시게미도 팬들이 범인으로 의심했으나
1994년 테레비 아사히 오자키의 의문사를
보도하던 특집에서 그녀가 범일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혀졌다.
 
일부에서는 그가 여러 사건등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라고도 여기고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의 전말은 
미궁으로 남게 되었다.
 
 
(포지션 원곡 / 오자키 마사키 - 'I Love you'.mp4)
여담으로 
유명한 이 영상에서의 땀은 마약 각성제땜에 난것이 아니라
콘서트에 앞서 엄청 뛰어서 난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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